생명과학

세포 쓰레기통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memo01004 2025. 8. 19. 15:29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 오토파지 연구로 열린 세포 생물학의 새로운 지평

서론: 세포 내부의 청소 시스템 발견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일본의 세포 생물학자 오스미 요시노리(Yoshinori Ohsumi) 교수에게 단독으로 수여되었다. 그는 세포가 자신의 구성 성분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과정인 오토파지(autophagy)의 핵심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스스로를 먹는다’라는 뜻을 가진 오토파지는 세포가 불필요하거나 손상된 단백질과 소기관을 제거하고, 이를 새로운 에너지와 원료로 활용하는 과정이다. 이 발견은 세포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으며, 노화·암·신경퇴행성 질환 등 다양한 인간 질환 이해와 치료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오스미 요시노리의 발견 여정

오스미 교수는 효모(yeast)라는 단순한 단세포 생물에서 오토파지를 연구했다. 당시만 해도 오토파지는 현미경으로 관찰된 모호한 현상일 뿐, 그 유전자적·분자적 기작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는 세포 내부에 소포가 형성되어 세포질 성분을 포식하고, 이후 리소좀(lysosome)이나 액포(vacuole)와 융합하여 내용물을 분해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오스미는 효모에서 오토파지를 제어하는 오토파지 관련 유전자(ATG, autophagy-related genes)를 하나씩 규명해 냈다. 이는 오토파지 연구의 돌파구가 되었으며, 이후 다양한 고등생물에서도 동일하거나 유사한 유전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발견은 오토파지가 생명 진화 과정에서 보존된 근본적인 생리 작용임을 입증한 것이다.

 

사실 오스미 교수님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현대에 와서야 오스미 교수님이 노벨상도 받으시고 오토파지의 응용이 현대의학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후 많은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funding도 많이 받을 수 있는 분야가 되었지만, 사실 오스미 교수님이 처음으로 오토파지의 존재를 발견하셨을 때 학계의 반응은 차갑다 못해 냉랭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 특히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발견 논문을 냈을 때부터 학계는 물론이고 각종 언론까지 관심을 가지는 연구업적으로 수상한 그룹과 처음에 발견하거나 가설을 주장했을 때 철저히 외면받는 연구를 수십 년 뒤에 인정받아 수상한 그룹. Public 한 곳에 글을 올려서 아주 점잖게 "철저히 외면받은"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더 직접적인 반응은 무시를 넘어선 거의 멸시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 한 예로 오스미 교수가 처음 오토파지에 대해서 연구해서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학계 사람들은 "그까짓 거 세포 쓰레기통 연구해서 무얼 하나?"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여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번째는 지금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있을 중고등학생을 비롯한 대학생, 대학원생들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육체계, 아니 심지어 해외의 교육체계에서라도 여러분의 첫 아이디어, 첫 가설, 첫 질문, 첫 발견등은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여러분의 생각과 실험결과가 절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여러 노벨상 수상자들이 이를 입증했듯이, 그것의 효용성, potential, 과학적 의미는 그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발견한 본인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관심이 있고, 일회성 발견 또는 연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에 답을 하고 싶고 계속 파고들고 싶다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사후가 될 수도 있지만), 분명 그 발견 & 연구의 가치를 알아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관심이 있는 한, 남의 평가에 얽매이지 말고 계속 매달려서 하다 보면, 본인도 행복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많은 고난과 역경이 기다릴 것이고 또 그것들을 뚫고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빛을 볼 날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남이 인정해 주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본인이 계속하고 싶은지 아닌지만 판단해서 그 길을 계속 갈지 말지를 판단했으면 좋겠다.

 

두번째 시사하는 바는, 이러한 과학연구에 연구비를 지급하는 정부 및 유관기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연구 제안서를 심사하거나 연구비를 지급할 때, 제안서를 제출할 당시의 연구의 가치에 대해서 또는 트렌드에 따라 평가를 하는데 이는 단기간에 상품화해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담하건대 오스미 교수가 한국에서 연구 제안서를 제출하면서 세포 쓰레기통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인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제출했다면 절대 연구비를 10원도 지원받지 못하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서술하였듯이 그때 당시의 트렌드에도 맞지 않고 새로운 연구분야이고 무엇보다 절대 단기간에 상품화나 의료기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 사업을 선정해 놓고 정부는 매년 노벨상 시상식이 있는 기간만 되면 왜 우리나라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나 라는 불만 아닌 불만을 표하고 있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모든 연구 사업비를 순수 기초과학에만 투자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인 최고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바라본다면, 정말 새로운, 트렌드랑 상관없이, 상품화 가능성과 상관없이, 심지어 그 의미가 뭔지도 모르는 그런 분야에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한테나 줄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런 미지의 영역에 대해서 이 연구자가 향후 10년, 20년, 30년의 본인의 인생도 묻지마 투자할 수 있는 그런 연구자를 잘 선별해서 끝까지 갈 수 있는 그런 연구자에게 지원이 되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연구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 노벨 과학상 위원회를 만들어서 국내 과학자 자문위원을 비롯한 외국인 과학자 자문위원들을 (이왕이면 노벨상 수상자들 또는 각 분야의 최고의 상 수상자들) 초청해서 가능성이 있는 연구자를 선별해서 10년, 20년 꾸준히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원리: 오토파지의 단계별 작동 메커니즘

오토파지는 크게 4단계로 진행된다.

  1. 개시 단계: 세포 내 스트레스(영양 결핍, 손상된 소기관, 단백질 응집 등)가 발생하면 ATG 단백질 복합체가 활성화된다. 이 과정에서 세포막 일부가 소포 형성의 출발점으로 동원된다.
  2. 소포 형성 단계: 세포질의 불필요한 단백질이나 손상된 미토콘드리아, 세균 등 이물질이 이중막 구조로 둘러싸이며 ‘오토파고좀(autophagosome)’이라는 소포가 만들어진다.
  3. 융합 단계: 오토파고좀은 리소좀(혹은 효모의 경우 액포)과 결합한다. 리소좀 내에는 강력한 가수분해 효소가 들어 있어, 내부 물질을 분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
  4. 분해 및 재활용 단계: 오토파고좀 속의 내용물이 리소좀 효소에 의해 단백질, 지방산, 뉴클레오타이드 등 기본 분자로 분해된다. 세포는 이를 다시 에너지 생성과 새로운 구조물 합성에 활용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세포 청소가 아니라, 세포 항상성 유지, 에너지 균형 조절, 손상 회복, 감염 방어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세포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토파지는 생존을 위한 핵심 방어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Process of Autophagy
Process of Autophagy

의학적·사회적 의의

오토파지 연구는 인간 질환 이해에 깊은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 암 연구: 오토파지는 손상된 세포를 제거해 암 발생을 억제하지만, 일단 암세포가 형성되면 오히려 생존 전략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오토파지는 암 치료에서 ‘양날의 검’으로 간주되며, 이를 조절하는 항암제 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신경퇴행성 질환: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헌팅턴병 등에서는 잘못 접힌 단백질이 축적되며 신경세포가 손상된다. 오토파지는 이러한 단백질 응집체를 제거하는 핵심 기전으로, 신경 보호 치료제 개발의 표적이 되고 있다.
  • 대사 질환: 비만, 당뇨병과 같은 질환에서도 오토파지 이상이 발견된다. 오토파지를 조절해 대사 균형을 회복하려는 임상 연구가 진행 중이다.
  • 면역 및 감염 질환: 세포 내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오토파지에 의해 제거된다. 이는 선천 면역 시스템의 중요한 일부이며, 항감염 전략 개발에도 응용된다.

더 나아가, 오토파지는 노화 연구의 중심에 서 있다. 세포 노화와 조직 퇴행은 오토파지 기능 저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를 활성화하면 수명 연장과 건강 수명 개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들이 발표되고 있다.


결론: 세포 청소 메커니즘에서 인류의 미래로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세포 내부에서 일어나는 자기 분해와 재활용의 정교한 과정을 밝힌 오스미 요시노리 교수에게 수여되었다. 그의 발견은 기초 과학에 머물지 않고, 현대 의학과 인류 건강에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오토파지는 세포의 ‘청소부’이자 ‘재활용 시스템’으로, 생명의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핵심 원리이다. 앞으로 오토파지를 조절하는 약물이 개발된다면, 암·치매·대사질환·감염병 등 현대 사회의 난치성 질환에 새로운 치료 전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오토파지 연구는 생명의 근본 원리를 밝히는 동시에 인류가 직면한 건강 문제 해결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기초와 응용을 아우르는 혁명적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