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 – 생체 시계의 비밀을 푼 세 과학자들
서론: 하루의 리듬을 지배하는 숨겨진 시계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미국의 세 명의 과학자 제프리 홀(Jeffrey C. Hall), 마이클 로스배시(Michael Rosbash), 마이클 영(Michael W. Young)에게 수여되었다. 그들은 모든 생명체가 갖고 있는 ‘생체 시계(circadian rhythm, 일주기 리듬)’의 분자적 원리를 규명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 곤충 등 다양한 생물은 24시간 주기를 따르는 리듬을 갖고 있다. 이 리듬은 낮과 밤의 변화에 맞춰 수면, 호르몬 분비, 체온 조절, 대사 활동 등을 조절한다. 세 과학자의 연구는 이처럼 당연해 보이는 현상이 세포 내부의 정교한 분자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연구의 배경: 파리에서 발견된 생체 시계 유전자
1970~80년대, 연구자들은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를 이용해 생체 리듬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Period(Per)라는 유전자가 리듬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Per 유전자가 어떻게 주기적으로 발현과 억제를 반복하는지, 그 메커니즘은 미스터리였다.
홀과 로스배시: PER 단백질과 음성 되먹임 회로
홀과 로스배시는 Per 유전자가 코딩하는 PER 단백질이 세포 내에서 일정 시간 동안 축적되다가, 다시 분해되는 주기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요한 점은 PER 단백질이 일정량 이상 축적되면 스스로 Per 유전자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즉, Per 유전자 → PER 단백질 생성 → PER 단백질 축적 → Per 유전자 억제라는 음성 되먹임(negative feedback) 회로가 형성되어, 24시간 주기의 리듬이 자동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원리가 밝혀졌다.
마이클 영: 주기를 정교하게 조절하는 추가 유전자 발견
마이클 영은 이 회로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Timeless(Tim)와 Doubletime(DBT) 같은 새로운 유전자를 발견했다.
- Tim 유전자는 PER 단백질과 결합하여 핵 속으로 이동시킴으로써 유전자 발현 억제를 가능하게 했다.
- DBT 유전자는 PER 단백질이 너무 빨리 축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해를 촉진, 리듬이 24시간 주기에 맞춰 조절되도록 했다.
이 발견은 생체 시계가 단순히 한두 개의 유전자가 아니라, 여러 단백질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된 정교한 시스템임을 보여주었다.
과학적 원리: 세포 속의 24시간 메트로놈
생체 시계의 근본 원리는 유전자 발현과 단백질 축적·분해의 주기적 되먹임 회로다. 이 회로는 단순히 한두 유전자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단백질의 상호작용을 통해 24시간 주기를 정확하게 맞추는 정교한 시스템이다.
먼저 Per 유전자가 낮 동안 활성화되면서 PER 단백질이 합성된다. PER 단백질은 세포질에서 점차 축적되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Timeless(TIM) 단백질과 결합해 핵 안으로 들어간다. 핵 안으로 들어간 PER-TIM 복합체는 다시 Per 유전자의 활성을 억제한다. 이로써 단백질이 많아질수록 유전자 발현은 억제되고, 단백질이 분해되면 다시 유전자 발현이 시작되는 주기가 형성된다.
여기에 또 다른 조절 인자가 개입한다. Doubletime(DBT) 단백질은 PER 단백질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여, PER 단백질이 너무 빨리 쌓이지 않도록 한다. 이 덕분에 리듬은 24시간이라는 일정한 주기를 유지할 수 있다. 만약 DBT가 없거나 기능이 약해진다면, PER이 지나치게 빨리 축적되어 리듬이 단축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강하면 리듬이 늘어나 수면 주기가 어긋나게 된다. 이는 실제로 인간의 ‘수면 위상 장애’ 같은 현상과 연결된다.
이 음성 되먹임 회로는 단일 세포 내에서도 자율적으로 작동하며, 각각의 세포가 작은 시계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인간의 경우, 뇌의 시교차상핵(SCN)이 ‘마스터 시계’ 역할을 하여 개별 세포 시계를 동기화한다. SCN은 망막에서 들어오는 빛 신호를 받아 주·야간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호르몬(특히 멜라토닌 분비 조절)이나 신경 신호를 통해 전신의 장기와 조직에 전달한다. 덕분에 인체는 낮에는 각성 상태로 활동하고, 밤에는 휴식과 회복을 할 수 있다.
이 분자적 시계 시스템은 단순히 수면·각성만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간에서는 포도당 대사를, 근육에서는 에너지 소비를, 면역 세포에서는 방어 반응을, 심장에서는 혈압과 심박 변화를 조절한다. 즉, 생체 시계는 전신의 생리학적 리듬을 지휘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이 시스템은 유전적 변이에 민감하다. 예를 들어, Per 또는 Cry(Per와 유사한 또 다른 조절 인자)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사람은 극단적으로 짧은 수면 주기나 장시간의 주기를 갖게 된다. 이는 유전적 요인이 개인의 수면 습관과 생체 리듬 차이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생체 시계의 과학적 원리는 유전자 발현 → 단백질 합성 → 단백질 축적 → 유전자 억제 → 단백질 분해라는 순환적 과정이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다. 이 회로가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세포 수준에서 작동하며, 빛과 같은 외부 신호에 의해 동기화됨으로써 지구의 자전 주기와 우리 몸의 생리 주기가 일치하게 된다.
의학적·사회적 의의
생체 시계 연구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확장시켰다.
- 수면 장애: 불면증, 교대근무, 시차 적응 문제 등은 모두 생체 시계의 불균형과 관련된다.
- 대사 질환: 비만, 당뇨병은 잘못된 식사·수면 리듬과 깊은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다.
- 정신 건강: 우울증, 조울증, 계절성 정서 장애 역시 생체 시계 교란과 연결된다.
- 암 연구: 세포 분열 주기와 DNA 손상 복구 과정도 생체 시계에 의해 조절되므로, 항암제 투여 시각(chronotherapy)이 치료 효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일상적인 생활 습관과 심각한 질병까지, 생체 시계는 인체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관점
핵심 TTFL 모델인 PER/TIM은 초파리에서 확립된 CLOCK/CYCLE에 의해 자체 유전자 전사를 억제하고 결합한다. 이 모델은 생체 시계의 표준 모델로 간주된다. 비록 핵심 단백질이 종에 걸쳐 보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는 생체 시계가 여러 번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핵심 TTFL 구조는 포유류, 식물, 사상균 뉴로스포라 크라사, 그리고 심지어 시아노박테리움 시네코코쿠스 아우레우스에서도 매우 유사하다. 흥미롭게도, 시아노박테리움에서 KaiC 인산화의 온도 보상 생체 주기 진동은 단순히 재조합 단백질과 ATP를 추가함으로써 전사 및 번역이 없는 상태에서도 시험관 내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최근 연구들은 인간 적혈구, 조류, 그리고 모든 생명 영역에서 퍼옥시레독신 단백질의 산화 상태에서 전사에 독립적인 생체 주기 진동의 존재를 나타낸다.
결론적으로, 모든 생명체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주기 시계는 일상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을 예측하고 적응할 수 있는 진화적 이점을 제공힌다. 실제로 시계 유전자는 이후 일주기 시계와 생리학의 다양한 측면 간의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병렬 피드백 루프와 함께 크게 확장되어 단순한 시간 측정을 넘어서는 역할을 입증했다.
결론: 우리 안의 시계를 이해하다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시계를 밝혀낸 세 과학자에게 돌아갔다. 그들의 발견은 “왜 우리는 낮에 깨어 있고 밤에 졸린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분자적 답을 제시했다.
생체 시계 연구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생리학적 원리임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 지식은 수면 치료, 대사 조절, 맞춤형 약물 투여 등 다양한 의학적 응용으로 이어질 것이다.
'생명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스테리한 수혈 후 간염의 원인은? -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0) | 2025.08.23 |
---|---|
세포는 산소를 어떻게 감지 할까? - 2019년 노벨 생리의학상 (0) | 2025.08.22 |
약이 아닌 우리 몸의 면역체계로 암을 치료하다-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 (0) | 2025.08.21 |
세포 쓰레기통으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있다? -2016년 노벨 생리의학상 (0) | 2025.08.19 |
기생충 감염 치료는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 (2) | 2025.08.18 |
인간의 뇌 속에 있는 GPS -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 (3) | 2025.08.16 |
세포의 "물류 시스템" (aka 세포가 쓰는 쿠팡)-2013년 노벨 생리의학상 (4) | 2025.08.15 |
유도만능줄기세포 (iPS)의 발견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4) | 2025.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