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명과학

미스테리한 수혈 후 간염의 원인은? -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by memo01004 2025. 8. 23.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발견

서론: 수백만 명을 구한 발견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하비 올터(Harvey J. Alter), 마이클 호턴(Michael Houghton), 찰스 라이스(Charles M. Rice) 세 명의 과학자에게 수여되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 원인 미상으로 불려 온 수혈 후 간염(Post-transfusion Hepatitis)의 정체를 규명하고, 마침내 C형 간염 바이러스(Hepatitis C Virus, HCV)를 발견하여 의학과 공중보건에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들의 연구는 단순한 바이러스 발견을 넘어, 정확한 진단법의 개발, 혈액 공급 체계의 안전성 확립, 그리고 치명적인 만성 간 질환을 완치할 수 있는 항바이러스제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는 “발견에서 치료까지”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며, 인류 보건 역사에 길이 남을 전환점이 되었다.


Overview of HCV life cycle

과학적 원리: 원인 불명의 수혈 후 간염에서 HCV의 규명까지

미스터리한 “비A형·비B형 간염”

1960~70년대, 수혈을 받은 환자들 중 상당수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간염에 걸렸다. 혈액 내 감염 인자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지만, A형이나 B형 간염 바이러스 검사에서는 음성이었다. 이 질환은 오랫동안 “비A형·비B형 간염(Non-A, Non-B hepatitis)”이라 불리며, 의학계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았다.

하비 올터 – 역학적 근거 확보

미국 NIH의 하비 올터는 장기간의 환자 추적과 침팬지 실험을 통해 이 미지의 간염이 수혈로 확실히 전파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는 혈액 속에 정체불명의 감염因자가 존재하며, 이는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바이러스의 성격과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마이클 호턴 – 유전자 클로닝으로 정체를 밝히다

1980년대 후반, 마이클 호턴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자생물학적 접근을 시도했다. 그는 환자의 혈청 속에 존재하는 항체가 “무언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1. 먼저 환자 간 조직에서 추출한 RNA를 역전사하여 cDNA를 합성하고, 이를 발현 라이브러리(expression library)로 제작했다.
  2. 이 라이브러리에는 수많은 유전자 조각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떤 조각이 실제 바이러스 유전자일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3. 그는 환자 혈청을 이용하여 이 라이브러리를 스크리닝했다. 환자 혈액 속 항체가 특정 cDNA 단백질과 결합한다면, 그것이 바이러스 유전자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았다.
  4. 이러한 반복적 실험 끝에, 기존에 알려진 어떠한 바이러스와도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RNA 바이러스 서열이 발견되었고, 이것이 바로 C형 간염 바이러스(HCV)였다.

이 방법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혈액에서 직접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데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체 반응을 단서로 유전자 클로닝을 통한 ‘간접적 바이러스 발견’이라는 전례 없는 방식을 성공시킨 것이다.

찰스 라이스 – 최종 인과관계 증명

마지막 과제는 “이 바이러스가 실제로 질병을 일으키는가?”였다. 찰스 라이스는 HCV의 RNA 게놈 말단 구조와 복제 과정을 정밀하게 규명하여, 감염성이 유지되는 완전한 형태의 HCV RNA를 합성했다. 이 RNA를 침팬지에 주입했을 때 간염이 발생했고, 혈액에서 HCV가 검출되었다. 이는 HCV가 수혈 후 간염의 원인임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결정적 증거였다.


왜 HCV 발견이 특별한가?

A형, B형, 심지어 HIV까지 많은 바이러스가 20세기 후반에 발견되었지만, 그 과정은 대부분 직접 바이러스 분리 혹은 전자현미경 관찰과 같은 전통적 접근법에 기반했다. 그러나 HCV는 매우 낮은 농도로 혈액에 존재하고, 배양도 불가능해 기존 방법으로는 검출이 거의 불가능했다.

HCV 발견이 특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혁신적 접근법: 항체 반응을 이용해 미지의 바이러스 유전자를 클로닝하는 방식은 분자생물학적 창의성의 결정체였다.
  2. 임상적 파급력: 발견 직후 혈액 선별검사가 도입되면서 수혈 후 간염이 사실상 근절되었다.
  3. 치료로 이어진 발견: 발견된 지 수십 년 만에 DAAs(직접 작용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어 HCV가 역사상 최초로 “치료 가능한 만성 바이러스 감염병”이 되었다.

즉, HCV 발견은 단순히 새로운 병원체의 보고에 그치지 않고, 진단–예방–치료라는 전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꾼 사례였다. 이 점이 다른 바이러스 발견과 구별되는 지점이며, 노벨위원회가 2020년 이 세 명에게 상을 수여한 이유다.


의학적·사회적 효과: 진단에서 완치까지

HCV 발견 이후 혈액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졌고, 수혈 후 간염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또한 HCV를 표적으로 한 항바이러스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현재는 95% 이상의 환자가 완치 가능하다. 이는 간경화, 간암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WHO는 HCV를 퇴치 가능한 감염병으로 지정하며 전 세계적 퇴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결론: 과학적 집념이 만든 현대 의학의 기적

2020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하비 올터, 마이클 호턴, 찰스 라이스의 연구는 “미스터리한 질환 → 바이러스 발견 → 진단법 확립 → 치료제 개발 → 퇴치 목표”라는 의학의 이상적인 궤적을 보여준다. 특히 HCV의 발견은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장벽을 분자생물학적 창의성과 집념으로 돌파한 사건이었다.

그 결과, 인류는 치명적인 간 질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을 얻었으며, 이 업적은 바이러스학과 의학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