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노벨 생리의학상 – 단백질 인산화의 세계를 밝히다
수상자: 에드먼드 H. 피셔(Edmond H. Fischer) & 에드윈 G. 크랩스 (Edwin G. Krebs)
수상 업적: 세포 제어 메커니즘으로서의 가역적 단백질 인산화 발견
1992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생명체 내 세포의 신호 전달 및 대사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가역적 단백질 인산화”를 발견한 두 과학자, 에듯 피겨와 에듯 크렙 그에 수여되었습니다. 이들의 발견은 단순한 생화학적 반응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수많은 세포 반응과 생리학적 조절 과정의 근간이 되며, 오늘날 암, 당뇨, 염증성 질환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이해와 치료 전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단백질 인산화의 기원: 글리코겐 대사에서 시작되다
1930~40년대 칼과 거티 코리는 글리코겐 인산화효소가 두 가지 형태(a와 b)로 존재하며, 이들 사이의 전환이 아데닐산(5′-AMP)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간의 전환 메커니즘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 미완의 과제를 이어받은 이들이 바로 피셔와 크렙서였습니다.
두 과학자는 원심분리, 여과, 효소 반응 등의 실험을 통해 글리코겐 인산화효소 b가 Mg-ATP 존재 하에서 a 형태로 전환됨을 증명했습니다. 이 전환 과정은 ATP로부터 효소에 인산기가 추가되는 인산화 반응이며, 그 중심에는 단백질 키나아제라는 효소가 존재함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인산화된 상태가 가역적임을 보여주었고, 이는 생체 내에서 단백질 기능이 어떻게 빠르게 조절되는지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습니다.
칼슘 이온이 포스포릴라아제 키나아제를 활성화하는 방식 역시 그들의 연구에 의해 규명되었고, 이 과정에서 칼슘 결합 단백질인 칼모듈린의 역할이 밝혀졌습니다. 이는 근육 수축과 대사 조절이 어떻게 정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단백질 인산화와 세포 신호전달의 연결
피겨와 크렙서의 연구는 인산화가 단순한 대사 조절을 넘어, 세포 내 다양한 신호 전달 경로의 핵심 조절 기전이라는 사실을 열었습니다. 특히 아드레날린이 사이클릭 AMP라는 '두 번째 메신저'를 생성해 글리코겐 분해를 유도하고, 이것이 인산화효소를 통해 연쇄적인 단백질 인산화를 유도한다는 경로는 세포 신호 전달 연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발견은 키나아제-키나아제-키나아제로 이어지는 단백질 인산화 캐스케이드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세포 반응의 조절 메커니즘—세포 성장, 분화, 사멸, 면역 반응—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이클릭 AMP 의존성 단백질 키나아제(PKA)의 발견은 신호 전달계 내에서 두 번째 메신저가 단백질의 인산화를 통해 효과를 나타낸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립했습니다.
타이로신 인산화와 질병 연결고리
1980년대 이후, 암 관련 유전자(SRC, abl 등)의 산물이 티로신 키나아제로 밝혀지면서 단백질 인산화는 질병 연구와 약물 개발의 핵심 타깃으로 부상했습니다. 피셔서는 별명 톰크스와 함께 최초의 단백질 타이로신 포스파타제를 분리 및 특성화하였고, 이는 단백질 인산화의 '끄기' 역할을 수행하는 조절 기전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했습니다.
단백질 인산화와 탈인 산화는 서로 균형을 이루며 세포 기능을 미세 조절하는데, 이 균형이 무너질 경우 암, 염증성 질환, 신경퇴행성 질환 등의 발병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단백질 키나아제 및 포스파타제는 약물 개발에 있어 주요한 표적이 되었고, 실제로 현재 수많은 임상 및 상용 치료제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한 면역 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이 단백질 인산분해효소 억제를 통해 작용한다는 사실은, 인산화·탈인 산화 조절이 약물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장기 이식 후 거부 반응 억제를 가능하게 하여 현대 이식 의학을 가능하게 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약물 타깃으로서의 단백질 키나아제
1992년 이후 단백질 인산화 연구는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으며, 특히 단백질 키나아제 억제제는 암 치료를 혁신시킨 약물 계열로 부상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2001년 승인된 이매티닙으로, 만성 골수 백혈병을 관리할 수 있는 질환으로 전환한 최초의 표적 치료제입니다.
현재까지 70개 이상의 단백질 키나아제 억제제가 승인되었으며, 다양한 종양 및 염증성 질환의 치료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신경계 질환, 대사성 질환, 심혈관 질환 등으로 그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으며, 약물 디자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기전의 억제제들이 지속해서 개발되고 있습니다.
단백질 인산화 연구는 기초과학에서 출발했지만, 임상 치료와 정밀의학의 중심으로 성장하며 생명과학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학적 파급력과 유산
에디 피셔와 에듯 크렙 스가 이룬 발견은 생명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꾸었습니다. 단백질 인산화는 이제 거의 모든 세포 기능의 조절 메커니즘으로 인식되며, 현대 의학의 주요 타깃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생화학 반응 하나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 기반이 되었고, 노벨상은 이러한 위대한 여정의 이정표를 세운 셈입니다.
그들의 연구는 지금도 전 세계 실험실과 병원에서 생명을 살리는 새로운 치료법 개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백질 인산화는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이며, 과학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2년의 노벨 생리의학상은 단백질 인산화라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조절 시스템이 생명현상을 어떻게 지탱하는지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향후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의 거대한 발전을 이끄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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