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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특별편]2020년 노벨 화학상- 유전자를 디자인하나? (CRISPR의 발견)

by memo01004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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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노벨 화학상 – CRISPR-Cas9 유전자 가위의 탄생

서론: DNA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시대

2020년 노벨 화학상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와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A. Doudna)에게 수여되었다. 이들은 세균이 진화시킨 면역 체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과학자들이 DNA의 특정 부위를 자유롭게 자르고 붙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인 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완성했다. 이 기술은 생명과학, 농업, 의학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발견의 배경: 세균의 면역 체계에서 비롯된 아이디어

CRISPR는 세균과 고세균이 바이러스의 반복 감염에 대응하기 위해 진화시킨 일종의 분자적 ‘기억 장치’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세균은 그 바이러스 DNA 일부를 잘라 CRISPR 배열에 삽입한다. 이렇게 축적된 DNA 조각은 ‘면역 기록’이 되며, 이후 같은 바이러스가 들어올 경우 이를 빠르게 인식할 수 있게 한다.

이 기록된 DNA는 RNA로 전사되어, Cas 단백질과 결합해 ‘가이드 RNA’ 역할을 한다. 이 RNA는 침입자의 DNA와 정확히 짝을 이루며 Cas 단백질을 유도하여 바이러스 유전체를 절단한다.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는 이 자연적 시스템을 단순화하고 재구성하여, 실험실에서 원하는 DNA 부위를 자르고 수정할 수 있는 범용 도구로 바꾸었다.


How CRISPR works
How CRISPR works

과학적 원리: CRISPR-Cas9의 정밀한 작동 메커니즘

CRISPR-Cas9의 작동 과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분자 수준에서는 매우 정교하다.

1. 가이드 RNA의 설계와 역할

  • 연구자는 목표로 하는 DNA 염기서열에 상보적인 가이드 RNA(gRNA)를 합성한다.
  • 이 gRNA는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 하나는 Cas9 단백질과 결합하는 ‘핸들’ 구조,
    • 다른 하나는 목표 DNA 서열과 상보적으로 결합하는 ‘유도 서열’이다.
  • gRNA는 Cas9이 세포 내 방대한 유전체 속에서 정확히 목표 위치를 찾아가도록 길잡이 역할을 한다.

2. PAM 서열 인식

Cas9 단백질이 DNA를 자르려면 목표 서열 옆에 반드시 PAM(Protospacer Adjacent Motif)이라는 짧은 염기서열이 있어야 한다.

  • PAM은 보통 “NGG” 형태(N은 임의의 염기, G는 구아닌)로 나타난다.
  • 이 제한 조건 덕분에 Cas9은 무작위적으로 DNA를 자르지 않고, 표적이 되는 위치를 정확히 판별할 수 있다.

3. DNA 절단 과정

  • gRNA가 목표 DNA와 정확히 결합하면 Cas9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면서 활성화된다.
  • Cas9은 두 개의 절단 도메인(RuvC와 HNH)을 통해 DNA 이중 나선을 절단한다.
  • 그 결과, DNA에는 이중 가닥 절단(double-strand break, DSB)이 발생한다.

4. DNA 수리 메커니즘

세포는 DNA 절단을 치명적 손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복구하기 위해 두 가지 주요 경로를 사용한다.

  1. 비상동 말단 연결(Non-Homologous End Joining, NHEJ)
    • 빠르게 절단 부위를 붙여 복구하지만, 이 과정에서 염기 삽입이나 결실이 자주 발생한다.
    • 이를 통해 표적 유전자를 고의로 파괴(녹아웃)할 수 있다.
  2. 상동 재조합(Homology-Directed Repair, HDR)
    • 연구자가 함께 제공한 ‘수정용 DNA 서열’을 참고하여 정확하게 복구한다.
    • 이를 이용하면 특정 돌연변이를 교정하거나,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할 수 있다.

5. 정밀성과 변형된 시스템

  • Cas9은 본래 단순히 절단만 하지만, 이후 연구자들은 Cas9을 변형시켜 DNA 절단 대신 특정 염기를 교정하거나, 전사 조절因자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응용했다.
  • 예를 들어, 절단 기능을 제거한 ‘죽은 Cas9(dCas9)’은 DNA에 결합만 하며, 전사 억제나 활성화 원자를 결합시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 수 있다.
  • 더 나아가, Cas9을 기반으로 한 베이스 에디터(Base Editor)와 프라임 에디터(Prime Editor)는 DNA의 특정 염기를 가위질 없이 바꾸는 정밀 도구로 발전했다.

응용과 파급 효과

  1. 의학
    • 유전병 치료: 겸상 적혈구 빈혈, 낭포성 섬유증 등 단일 유전자 질환을 교정할 가능성을 열었다.
    • 암 연구: 종양 발생과 전이 과정에서 관여하는 유전자를 분석하고 새로운 면역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된다.
    • 감염병 대응: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CRISPR 기반 진단법이 개발되어 빠른 바이러스 검출에 기여했다.
  2. 농업
    • 가뭄·염분 저항성 작물, 병충해 저항성 식물 등을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다.
    • 기존의 GMO 방식보다 훨씬 정밀하고 빠른 방식으로 새로운 품종을 창출할 수 있다.
  3. 기초 생명과학
    •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게 되어, 세포 발달, 면역 반응, 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논란과 윤리적 쟁점

CRISPR 기술은 강력한 만큼 윤리적 논란도 동반했다. 2018년, 중국 연구자가 세계 최초의 CRISPR 아기 탄생을 발표했을 때, 전 세계 과학계와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 유전자가위의 의료적 사용(예: 불치병 치료)과
  • 인간 배아 편집처럼 사회적·윤리적으로 민감한 사용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며, 기술의 잠재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무분별한 오용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왜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닌 노벨 화학상

CRISPR 기술은 사실상 현대 생명과학 및 현대 유전자 치료에 기본이 되는 원천 기술이나 노벨 생리의학상이 아닌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노벨상 분야 기준은 다음과 같다.

  • 노벨 생리의학상: 주로 생명체의 생리적·병리적 과정, 즉 생명 현상과 질병 원리를 밝히는 연구
  • 노벨 화학상: 분자 수준에서 물질이나 화학 반응을 이해하고 조작하는 연구

CRISPR 연구의 핵심은 DNA라는 분자를 ‘화학적으로’ 자르고 편집하는 기술이었기 때문에, 생리학적 발견이라기보다 분자적 조작 기술로 분류된 것이다. 만약 미래에 CRISPR를 이용한 범용적인 유전자 치료제 (단순 한 환자의 한가지 유전적 변형만 치료하는 치료제가 아닌, platform으로서 어떠한 유전 질환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 가 개발되고 의학적 효과및 안정성이 증명 된다면 관련된 기술로 한번 더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같은 수상자가 아닌 이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에게...)


결론: 생명 설계도의 혁명

샤르팡티에와 다우드나의 발견은 인류가 생명의 근본 단위인 DNA를 자유롭게 편집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게 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CRISPR-Cas9은 단순한 과학적 성취를 넘어, 의학·농업·산업 전반에 걸친 거대한 변화를 촉발한 기술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 노벨 화학상은 생명과학이 맞이한 새로운 시대를 기념하는 상징적인 수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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